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문단 편집) == 사상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H5JGE3lhuNo)]}}}|| 헤겔은 특히 철학자 중에서도, 철학 체계가 방대한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독일 현지를 제외하면 그의 철학적 면모들 중 일면만이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한때 영국에서 유행하던 헤겔은 그의 논리학적 일면이었고,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헤겔은 [[정신현상학]]의 헤겔이었다. 헤겔은 칸트-피히테-셸링-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관념론의 전통에 있는 철학자로서 헤겔 이전 철학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칸트는 대륙의 합리주의 철학과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을 종합해 선험적으로 주어진 오성(Verstand)의 12가지 범주를 통한 인식과 사물이 일치되는 것을 진리로 긍정했으며, 경험되지 않는 명제는 증명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인간 인식의 조건과 한계를 분명히 지은 것이다. 이를 통해 대륙의 합리주의 철학에서 말한 신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명제들은 말 그대로 형이상학으로 남게 되었다. 모든 명제는 경험을 통하여 코기토 안에 포섭되어야 한다. 그러나 칸트는 오성에 의해 경험이 될 수 있는 자아(코기토)와 달리 자아를 인식하는 자아인 초월적 자아의 구분을 짓고, 초월적 자아에 인간의 존재론적인 존엄성을 부여한다. 초월적 자아에 의해 인간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 대우되어야 하며, 그리고 외부적인 것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닌 자신의 자유를 통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도덕 법칙을 따르는 존재론적인 근거를 갖게 된다. 피히테는 이러한 자아의 구분을 자아-비아-절대자아로 포섭한다. 칸트가 인간의 인식 조건과 한계를 구분짓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이 세상에서 도덕 법칙을 따르며 살아가야 할 존재론적 근거로서 초월철학을 마련했던 것과는 달리 피히테는 절대자아가 자아(인간)을 통하여 자신의 자유를 실현한다고 말하였다. 자아는 비아(사물)와 구별되는 존재라서 절대자아를 포섭하는 존재인 것이다. 셸링은 절대자(das Absolute)의 개념을 더 확장하여, 절대자는 단순히 인간 자아에 의해 그 이념(Idee)을 실현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또한 자기 자신으로부터 외화되어 사물(자연)을 산출하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절대자로부터 사물이 산출되고, 그 사물은 잠재태로서 존재하며 종국에는 사물로부터 다시 절대자로 복귀하는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이 세상에서 절대자는 자신의 이념을 실현하다. 셸링의 절대자는 인간에 의해 포섭되면서도 동시에 자연을 산출하는 절대자인 것이다. 이러한 절대자의 개념은 헤겔에게 비판을 받는다. 헤겔은 슐라이어 마허나 셸링과 같이 신에 대한 직관에 머물거나 단순히 이 세계를 유한자와 무한자로 양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에서 시작하여 개인과 사회의 관계와 역사를 절대자의 전체적인 움직임으로 바라본 것이다. 의식(감각-지각-오성)-자기의식-이성-정신-종교-절대지(Das absolute Wissen)의 과정을 거치며 유기체와 같이 생명력을 지니는 것이 진리요 절대자의 현현인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사회와 역사는 주관정신(의식-자기의식-이성)의 부정성을 지양하여 절대정신의 단계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이때 절대자는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이 세계와 철저히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이 세계에 실현된 잠재태로서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 유명한 헤겔법철학의 문장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독일 관념론에서 이성(Vernunft)는 합리적 사고의 이성만이 아니라 신이 창조하고 주재하는 이 세상의 신적인 질서까지 포섭하는 인식론을 말한다. 이성적인 것이 현실에서 실현되고, 현실적인 것은 그렇기에 곧 이성적이다는 말이다. 인간의 인식에서 출발하여 절대지로 나아가는 변증법적 운동의 과정에서,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 타자, 즉 부정성은 그 존재 자체가 말소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양(Aufheben)을 통해 변증법적인 발전을 거듭하는 것이다. 헤겔을 단순히 '정반합' 수준으로 이해하면 안 되는 것이 여기에 있다. 단순히 A+B=C와 같은 변용이 일어난다는 게 아니라, 인식론부터 출발하여 인간과 사회의 관계, 사회의 역사적 발전 과정은 모두 다 그와 같은 불완전한 부정성을 포섭하여 발전해나가는 진취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발전을 위한 '포섭'을 전체주의적이라고 비판하여 왔지만, 최근에는 '부정성'의 개념에 포착하여 다시 헤겔이 부각되고 있다. 헤겔이 스스로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말했듯 철학 연구는 결과를 완성해내는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과정과 운동인 것이다. 넓게 보면 결국 헤겔의 비판자들은 헤겔에 이미 포섭되어 있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